새벽 예배 본문 출 8:25-32 말씀에는 바로가 모세에게 타협안을 제시하는 광경이 나오는데 박은일 목사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구별'이라는 의미의 거룩에 대하여 설교하셨다. 종종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은 탄압보다는 타협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 모세는 바로가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는 (25 절) 타협안에 대하여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7 절) 하고 단호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의 예배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겠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출근해서 오늘은 정부의 SBA 융자해 주는 곳에서 발표한 RRF (Restaurant Revitalization Fund) 관련 고객들을 어떻게 안내해 주는 것이 좋겠는지에 대하여 가주 법인과 연결하여 회의를 했다.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견을 나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lock down 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본 업종 가운데 하나인 식당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1 년 지나서까지 마련하는 미국 정부의 모습이 겉으로 보이는 치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부에서 공공의 안전을 위하여 내린 어쩔 수 없는 조치지만 그로 인하여 피해를 받게 된 곳은 재정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소상공인들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지원 방침에 대해서 생각이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집단주의에 익숙한 국민 정서에서 나오기 힘든 정책일 것 같다. 그런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은 자유나 국민의 권리 측면에서 볼 때 아직도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머지 일과 중에는 사무실 이전 관련 공사 견적을 받는 일과 통신 시스템 변경에 따른 기존 업자 통보와 새 업자의 계약 내용 검토 등으로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집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Wenatchee에서 돌아온 아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왔다. 한국 식당이 50% 정도 손님을 받게 된 상황에서 꽤 바쁠 정도로 사람들이 외식을 하는 것 같아서 백신 접종 후의 변화된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집에 와서 '내 딸 하자'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지난주만큼 감동적인 사연은 없었지만 재미있게 봤다. 조금씩 곁눈질로 보았지만 '유명 가수전'에는 김범수 가수가 나왔는데, 대담할 때 공연 전 목 푸는 방법으로 소개한 빨대를 이용한 warm up & cool down 방법은 활용해 보려고 한다. 이승윤 가수와 협연한 '위로'라는 곡은 모르는 노래였는데 참 좋았다. 원곡도 찾아서 들어 봤는데, 원곡도 좋았지만 이승윤이 편곡했다는 곡은 또 다른 매력으로 좋았다. YouTube 보다가 극동방송에서 전재용과 박상아 부부가 출연한 프로그램에 다다르게 됐다.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전재용이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스쳐 지나듯 본 기억이 있는데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인 관계로 인연이 있기에 관심이 갔다. 당시 대통령의 자제였지만 그리 튀지 않게 학창 생활을 한 정도로 알고 있고 오며 가며 볼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대학 생활을 하면서 특히 정외과를 다니면서 얼마나 당시의 학교 분위기가 힘들었겠나 생각이 된다. 데모가 없이 지나가는 주는 한 번도 없었고, 처음에는 사복 경찰들이 학교 안에 상주하면서 데모가 나면 신속히 보통 도서관 2 층으로 진입해서 주동자를 체포하던 모습이 생생한데 그 주요 쟁점이 광주와 관련하여 전두환 물러가라는 것이었으니 아버지에 대한 반대를 피부로 느끼는 아들의 심경이 착잡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초등학교 후배라고 알고 있는 포항제철 박태준 전 회장의 딸과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등 평탄치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정도 밖에는 모르지만, 이번에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서 복역도 하고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산 관련 논란이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잠시 본 대담하는 모습은 전에 알고 있던 조용한 모습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목회의 길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상념에 젖는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어떤 사람에 대하여 알면서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는지, 그 사람이 신앙을 통하여 회개와 변화된 삶으로 돌아설 때 우리는 얼마나 용납하고 있는지, 과연 우리는 쉽게 남을 정죄할 수 있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등등 나의 가벼움에 대하여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그의 진심은 하나님께서 아실 터이니 주께 맡기고 우리는 섣불리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재용아 멀리서나마 기도 하마. 1 시 정도 돼서 취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