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야기

기독교인이 됨의 유익

KC Lee 2012. 1. 15. 18:37

모태 신앙으로 기독교 가정 가운에 자라났지만 종종 기본적인 질문에 돌아갈 때가 있다. 믿음과 행위의 문제와 같이 많이 고민한 것일 수록 그나마 스스로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주제들도 있지만 그때 그때 단상처럼 지나가는 질문들이 있다.

특히 생명의 삶을 매일 읽으면서 그 날의 본문을 통해서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하고, 또 나름 정리되는 것들도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올해(2012 년) 1 월 13 일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본 '기독교인이 됨의 유익'에 대한 것이다.

 

주변에 전도를 하고자 하고자 할 때 '과연 믿지 않는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 무엇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흔히 기복 신앙적인 측면에서 대답하는 것을 보면 매우 단순하다. 즉, 믿으면 복 받는다는 명쾌(?)한 논리다. 물론 믿으면 복을 받지만, 그것이 흔히 세상에서 생각하는 물질적인 복만이 아닌 것은 예수님의 8 복을 보더라도 명확한데, 그 논리의 단순성과 한국 사람의 정서에 익숙한 샤머니즘적 사고에 기대어 쉽게 전파되는 사고이기도 하다.

또한 영생이란 주제에 집중하여 내세 신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논리도 그에 못지 않게 우세한 것 같다. 유한한 인간의 생명에 회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을 생각할 때, 특히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 자기를 돌아 보게 될 즈음 이러한 생각은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역시 핵심이 되는 중요한 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이중적인 입장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 세상을 향한, 이 세상을 위한 삶의 목적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신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그러기에 로마서 5:1-11 본문 가운데 특히 9 절과 10 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본 바 기독교인된 우리의 유익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정리해 본 나의 사고를 적어 보고자 한다.

 

첫 째 유익은 1 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바울 사도가 말씀하셨듯 '하나님과 화목함'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실존적으로 인간의 죄성과 만날 수 밖에 없는 솔직한 사람이라면 그 가운데 완전하신 하나님과 괴리된 인간의 한계를 직면하게 된다. 폴 틸리히가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그의 Theory of Culture에서 이야기("Religion, in the largest and most basic sense of the word, is ultimate concern.")한 바와 같이 고등 종교라면 이러한 실존적인 물음 앞에서 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인간 쪽에서 찾아 가는 것과 달리 신이 계시하시고 만나 주신다는 것에서 차이를 갖는 기독교적인 특징을 통하여 '화해'가 이루어지는 기독교에서 그 유익을 찾게 된다.

사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소위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가 기독교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데, 그 역시 하나님 쪽에서 은혜를 통하여 베풀어 주시는 것이고, 이렇게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서 인간은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실존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하여 인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유도 누리게 되는 것이고,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죄로 인한 결과인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샬롬(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시 천군 천사가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찬송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둘 째는 2 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고백한 것과 같이 우리가 구원받아 영생할 것을 소망하며 얻는 유익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앞에서도 내세 신앙을 언급하였지만 그것 자체로만 목적을 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지향점으로, 또한 '종말 신앙'을 가지면서 갖게 되는 긴장감과 그 안의 소명 의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하나의 궁극적 지향점(Ultimate Goal)을 갖게 하는 측면에서의 '영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합목적성을 갖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목표를 상실하고 그 가운데 방황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뚜렷한 지향점을 갖는 기독교인의 삶은 그 과정 역시 유의미한 것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의 즐거움이다. (11 절,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바로 이것이 3 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라고 말씀하신 바 어떤 상황 가운데에도 기독교인이 즐거워 할 수 있고, 또 즐거워 해야 하는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이기에 기독교인이 됨의 유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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