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매일 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8 월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세 달 이상 써왔기에 이제는 습관화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잠시 방심하는 사이 며칠 치의 일기를 몰아서 토요일에야 쓰게 된다. 기억도 가물가물 하여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는 3 일 전의 일들을 제대로 되짚어 보지 못할 정도다. 어쩌면 이렇게 가끔 밀리게 되는 원인이 어제인가 시청한 '책그림' 유튜브에서 소개한 책 <습관의 디테일>에서 행동(B)으로 이끄는 3 요소로 지적한 동기(M)와 능력(A)과 자극(P) 가운데 동기가 불분명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뒤늦은 일기를 쓰며 생각해 본다. 다음의 내 블로그에 쓰고는 있지만 나 자신도 나중에 돌아보기 힘들 것 같기도 하고, 간혹 공개글로 쓰더라도 누가 읽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힘든 공간이라서 내가 일기를 쓰는 행동에 대한 동기가 애매하다.
사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자극을 준 것은 이슬아 작가의 세바시 영상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글쓰기 연습의 일환으로서 쓰는 일기의 동기가 강했던 것 같다. 물론 일기를 쓰면서 좋아진 점도 있다. 가장 큰 것은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 의식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시간을 쓰려고 노력한다던지, 일과 후 집에서 지내며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의식하게 되고 낭비하는 시간 사용에서 복원력을 갖는다던지 하는 것이 일기를 쓰면서 조금 달라진 일상의 모습인 것 같다. 또한 매일 새벽 예배 때의 말씀을 다시금 곱씹어 보게 하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건 사고가 숙성되지 않고 매일 비워지는 느낌 같은 것이다. 아무래도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의 주기도 하루 단위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아직 일기 쓰기의 단점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전에 일기를 쓰지 않을 때에도 오랜 시간을 묵힌다고 어떤 사고를 잘 정리한 것은 아니어서 그냥 느낌으로 사고가 얕아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한 동안 생각 노트에 글을 쓰던 것도 하지 않은 지 오래됐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단상을 적는 수첩도 나중에는 조금 형식화돼 버리기도 해서, 어쩌면 이건 나 자신의 성향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페이스북에 가끔 적었던 글들이나 전에 생각 노트에 쓴 글들도 며칠 묵힌 결과로 쓰인 글이라기보다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일필휘지로 적어간 것들이었다는 생각에 이르면 일기 탓을 할 일도 아니다.
어쨌든 토요일 저녁 시간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매일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심리적인 죄책감(?)에 대하여 변명하는 말로 일기 탓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기를 분명히 해두고 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몇 달째 써오고 있는 일기 쓰기에 나름 아래와 같이 일기를 쓰면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자는 것
일기를 쓰기 전의 나의 회사에서의 일과는 밀려드는 일에 치여서 하루를 지나고 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나날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그때그때 한 일들을 적어 보면서 일기를 쓸 때 과연 중요한 일들에 집중했는지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은 다음 날의 일과를 대하는 자세도 조금 다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번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일들을 적은 메모를 보면 회사의 계약적인 내용들을 검토하고 처리하는 일들(법무), 인사 관련 일로서 정책을 결정하는 일과 일상적인 처리를 요하는 일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계속 비상 체제로 운영되므로 그와 관련된 변동 사항을 분석하고 결정하는 일), 운영 책임자로서 의사 결정을 한다던지 research 하는 일들, 회사의 주요 상대인 프로세서들과 협의하거나 정보를 분석하고 공유하는 일, IT 관련 업무 조정 및 관리, 거기에 더하여 주요 구매 관련 일까지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은 많았는데, 한 일들을 정리하고 할 일들의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서 처리하는 방식이 습관화된 것은 일기 쓰기를 통해서 얻어진 성과였고, 그로 인하여 좀 더 체계적인 업무 처리도 가능한 것 같다.
또한 집에 와서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아직 집에 오면 쉬고 싶은 마음에 하고 싶은 일들, 예를 들어 매일 책을 읽는다던지 하는 것은 아직 매일 잘하고 있지는 않다. 여전히 페이스북이나 한국 기사들을 읽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게임을 하고 하는 일들로 저녁 시간이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일기를 쓰는 시간은 꾸준히 지키고 있다. 책 읽는 행동도 조금 더 동기 부분을 강화시켜 자극과 함께 습관화해 봐야겠다.
2. 좀 더 깊은 신앙을 갖자는 것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순서적으로 먼저 나열하는 방식을 사용하다 보니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대한 글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게 된다. 그러면서 되도록 그 날 은혜받은 내용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대체로 좋기 때문에 내가 따로 더 할 일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서 오늘 말씀을 전하신 단 9 본문에서 다니엘의 기도를 통한 교훈을 말씀하신 것은 예배 후 기도 시간 내내 나의 생각 속에 머무를 정도로 좋은 말씀이었다. 우리의 기도가 나 자신을 향하기 쉬운데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나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을 생각하며 그 날에 집중적으로 상고할 말씀을 찾는 노력을 통해서 새벽 예배 시간도 집중하게 되고, 붙들고 기도하고 실천할 말씀을 얻는 날들이 종종 생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의 신앙과 영성이 더 깊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3. 글을 잘 쓰는 것
이 부분은 feedback 받을 길이 없어서 어떻게 좋아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 꾸준히 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희망한다.
이상과 같이 정리하다 보니 조금 상투적인 느낌이 든다. 그럴 듯 하지만 매일의 삶이 의미 있는 행동과 생각으로 꽉 차는 나날은 아니다. 오히려 마냥 게을러지고, 오늘처럼 하루 종일 빈둥빈둥 지내다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야 경건(?)해진 날들도 많다. 그렇지만 일기를 매일 쓰므로 앞서 잠시 언급한 '복원력'은 생기는 것 같다. 즉, 가끔 (아니 종종) 일탈하지만 그래도 일기 쓸 거리가 있는 일들을 만들려고 애써 보는 가식(^^) 같은 복원력 말이다. 그런 자극으로서 일기 쓰기는 계속해야 하겠다.
PS. 거창하게 일기 쓰기를 돌아보는 글이 되다 보니 지난 주간 그동안 재미있게 시청하던 수목 드라마 '구미호뎐'이 잘 마무리된 것에 대한 후기를 적지 못했다. 전에도 여러 형태로 각색된 구미호 전 소재의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남자 주인공이 구미호라는 설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는데, 마치 원작이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짜임새가 있는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이동욱, 조보아 두 주연 배우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김범을 포함한 주조연 배우와 조연, 중견 배우의 역할도 훌륭했다. 각종 토속신들의 이야기를 맛보기 식으로 소개한 것도 신선했다. 올해 본 드라마 중에서 5 점 만점에 5 점을 줄만한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오늘 본 '스타트 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제 내일 마지막 회에서 보게 될 사업적인 부분의 갈등이 살짝 예고되기는 했지만 주인공들의 사랑은 오늘 회차에서 정리가 끝났다. 개인적으로 김선호 배우가 역을 맡은 한지평을 응원했지만 어쩌면 결론은 이렇게 날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름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에 재미있게 시청한 드라마다. 내일 종방을 앞두고 있지만 벌써 5 점 만점에 5 점의 평점을 줘도 아깝지 않은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구성의 극이었다고 생각한다.